어느 날 문득, 우리가 아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눈부신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라는 생각이 스쳐갈 때, 우리 마음속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조용한 질문이 자리 잡습니다. 바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삶의 거울로서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죽음의 철학은 단순히 죽는다는 생물학적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적 대답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에게 불경죄로 고발당한 후, 독배를 들며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제자 크리톤이 도망칠 기회를 마련해주겠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두렵다는 건,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지도 모릅니다.” – 소크라테스, 『변명』 중에서
죽음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두려움이 아니라 사유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으며, 죽음을 삶의 마무리이자 평가의 순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죽음을 의식하는 삶: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
20세기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을 실존적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흔히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방식, 즉 일상에 묻혀 타인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 비판했습니다. 반면,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의식하는 삶을 “본래적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자만이, 비로소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의 사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너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물음이 아니라, 죽음을 삶 속으로 끌어들인 철학적 도전입니다.
죽음의 훈련, 죽음의 초월: 스토아 철학과 문학의 만남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와 세네카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죽음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선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자고 말합니다.
“죽음이 두렵다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먼저 결정하라.” – 에픽테토스
이러한 생각은 문학 속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갈매기의 꿈』에서 조너선은 “삶은 더 높은 의미를 향한 연습”이라며 죽음을 끝이 아닌 비상으로 받아들이죠. 또한 『어린 왕자』에서도, 죽음은 장미와 재회를 위한 여정의 일부로 묘사됩니다.
죽음의 철학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죽음을 피하려 하지 말고, 죽음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라.”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느껴지나요, 아니면 삶을 더 소중히 느끼게 하나요?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더 깊어지고 의미 있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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